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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rates Express (Eric W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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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보자마자 사고 싶은 책이었다. 표지 디자인, 제목, 부제까지 전부 나를 사로잡았고 곧바로 계산대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쁘디 바쁜 현실 속에서 잠시 쉬고 사색에 잠기고 싶은 내면의 욕구였던 것 같기도 하다. 사색.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단어이다. 평소에 나는 잔잔한 피아노나 오르골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곤 하는데, 그럼 세상과 단절되어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보거나 최근에 떠오른 생각 혹은 감정을 만지작 거리며 해석하려 애쓴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나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그는 사색의 장소를 기차 안으로 정했다. 그는 기차를 '태아를 감싸는 양막의 내부'라 칭하며 오로지 '기차로 이동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광활함과 아늑함의 희귀한 조합'이 있음을 자랑한다. 이런 대단한 책을 출판한 철학가와 비슷한 속성을 공유하다니 괜히 나 자신이 뿌듯했다. 이 책은 방대한 지식과 사고를 알게 쉽게 해설해주지만, 그럼에도 한번에 소화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책에서 소개하는 14명의 철학자중 한명만 뽑아보았다. 바로 초월주의/환경주의의 대가로 꼽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인데, 소로의 특별함은 그의 '보는 법'에 있다. 소로는 '월든'을 집필하며 자연으로 회귀한 괴짜 철학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에 반해 그의 관찰력과 사고 체계는 저평가 되어 있다. 소로는 어떤 물체를 바라볼때, 인식과 결론의 간격을 최대한 늘렸다. 즉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확신이 들때까지 오래 머무르는 것이다. 만약 물건이나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들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에 비치는 미가공 데이터에서 먼저 정보를, 그리고 의미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촉구한다. 끝으로 저자는 소로처럼 자신만의 월든을 찾으라고 전한다. 월든은 소로에게 휴식처이자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공간이었며, 무엇보다 자신을 연구할

The Vein of Speech (Lee Joo 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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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결 (이주리)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위이지만, 그만큼 신중을 가해야 하는 것임에도 틀림없다. 특히 말을 섣불리 꺼내고 나중에 후회하는 찝찝함은 몇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실수가 쌓일수록 자신의 말은 검열 대상이 되고 머릿속에서만 맴돌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주리 작가님은 30가지의 조언을 통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다. 때론 자신의 강연을 예로 들기도 하고, 때론 지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독자로 하여금 쉽게 공감하게 해준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호흡 조절만으로 말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는 게 떨리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몸속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데, 그럴수록 호흡이 얕아지고 거칠어진다. 이럴 때 복식호흡을 하면 산소가 적재적소에 공급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즉 자연스럽게 부교감신경계의 활동이 늘어나 목소리의 떨림을 완화된다는 것이다. 이 조언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다른 조언들과는 달리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발표때마다 떨어서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팁으로, 앞으로 복식호흡을 연습하여 편안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싶다. 한편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도 흥미롭다. 책에서 소개한 메라비언의 법칙 (The Law of Mehrabian)은 사람의 이미지와 인상을 결정하는 데 비언어적 요소가 93 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말하는 내용 7퍼센트, 목소리(억양, 톤, 속도, 크기) 38퍼센트, 시각적 요소(몸짓, 시선, 걸음, 외모, 착장) 55퍼센트로 구성된다. 보통 좋은 이미지가 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을 제대로 점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서로 알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다면 승부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한 템포 여유를 줄 때 더욱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103)" "현대는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라기보다 집중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150)" ".

Almond (Sohn Won P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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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몬드 (손원평)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초반에 든 생각은, 예전에 읽은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과 주인공이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둘다 감정이 결여되어 있고 이로 인해 타인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 영문 소설은 추리가 바탕이 되어 있다면, '아몬드'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인하게 그 실상을 드러낸다. 주변 가족들의 절망과 절망 자체를 공감하지 못하는 선윤재. 독자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게 하는 일가족의 몰살과 혼자 남겨진 고등학생. 편도체(amygdala)가 비정상적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윤재는 삶을 묵묵히 사는 반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독자가 고통을 받는 점 또한 슬픈 모순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윤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윤재가 '느낄' 수 있도록 갑자기 그의 삶에 들이닥친 곤이와 첫사랑인 도라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행하며 신기하게도 감정 결여자인 윤재에게 위안을 얻는다. 특히 곤이는 주변의 환경과 편견이 얼마나 사람을 나락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다행히 작가는 마지막에 곤이의 극적인 귀화를 통하여 사람의 선한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는 결국 사람들의 시선과 선동이 그 본성을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뜻한다. 곤이는 어린 나이에 필사적으로 발악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작중 묘사를 보면 너무나도 애처롭다: "곤이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의미를 모를 웃음을 머금은 입이 빠르게 실룩거렸다." 그러나 의문이다.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보며 공감을 하겠지만, 이것은 위선이 아닌가? 우리는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였을 때 외면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그 외면은 너무 당연시하여 일말의 죄책감도 사라지지 않았는가? 다행히 결말은 희망적이다. 윤재의 희생을 통해 용기를 낸 곤이, 절망적인 뇌사 상태에서 회복한 어머니, 그리고 끝내 감정을 조금이나마 맛

What a City Lives on (Yoo Hyun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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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항상 이상하게 생각했다.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우리는 보통 삭막한 빌딩들이 나열되고 사람들이 바쁘게 다니는 답답함을 느낀다. 반면 건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는 예술성과 아픔다운 구조, 장식 등을 떠올린다. 도시는 건축물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단어는 너무나도 상반된 분위기를 지닌다. 이런 궁금증을 세세하고도 인문학적으로 해소해 준것이 유현준 작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 이 책은 좋은 도시, 건축, 거리가 무엇인지 때로는 철학적으로, 때로는 과학적으로, 때로는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첫 장에서는 '좋은 거리'가 무엇인지 정의하였는데, 두가지 기준으로 판가름낸다: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 거리를 걸을 때 우리는 보통 멍하게 걷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앞에 비치는 풍경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거리에 가게가 많이 들어가면 우리는 짧은 시간내에 시선을 전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골목길, 가게가 많을 때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골목이나 가게로 들어갈지의 선택은 두가지 경우의 수를 내포하며, 이는 새로운 골목이나 가게를 접할 수록 지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이벤트 밀도가 높은 것은 자신의 경로에 주체적이고 선택을 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한편 공간의 속도는 말 그대로 그 거리의 속도감을 뜻한다. 각 물체(자동차, 인간)의 속도를 모두 더해 총 면적으로 나눈 것인데, 이 수치가 너무 높다는 것은 주변이 어지럽도록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시속 4km의 속도감을 가장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나중 에서는 공간과 권력의 연관성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노출 될수록 권력은 낮아지고, 자신은 자유롭게 남들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권력이 높아진다. 이런 분석 뿐 아니라 작가가 건축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고, 철학적으로 고심하였는지도 그대로 드러난 책이었다. 우리는 흔히 건축 현장을 먼지나는 곳에서 벽돌을 쌓고 창문을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with Apocrypha 5th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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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revious Bible texts I read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escaping the temptation of demons and abiding God. For instance, Job suffered a great deal undergoing the demon’s mental intrusion and starts to doubt God. So although he encounters God in the end and is deemed blameless, the text elaborates in detail how humans are greatly tormented by the evil and overcoming it eventually bestows true salvation. However, I was surprised how Luke diverges from this tradition; the presence of demons here is very trivial. They only serve as a minor tool to demonstrate the superiority of Jesus as he casts them out so easily. Luke himself uses phrases such as “easily” and “as soon as” to imply how much the casting was effortless. Instead, Luke emphasizes on how the humanity is already rotten from its core, requiring massive salvation. The intercourse between Jesus and Pharisees arises as the central clash within the text and uses the Pharisees as the reflection of sinful humanity. As a res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