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ond (Sohn Won Pyung)

 



아몬드 (손원평)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초반에 든 생각은, 예전에 읽은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과 주인공이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둘다 감정이 결여되어 있고 이로 인해 타인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 영문 소설은 추리가 바탕이 되어 있다면, '아몬드'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인하게 그 실상을 드러낸다. 주변 가족들의 절망과 절망 자체를 공감하지 못하는 선윤재. 독자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게 하는 일가족의 몰살과 혼자 남겨진 고등학생. 편도체(amygdala)가 비정상적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윤재는 삶을 묵묵히 사는 반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독자가 고통을 받는 점 또한 슬픈 모순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윤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윤재가 '느낄' 수 있도록 갑자기 그의 삶에 들이닥친 곤이와 첫사랑인 도라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행하며 신기하게도 감정 결여자인 윤재에게 위안을 얻는다. 특히 곤이는 주변의 환경과 편견이 얼마나 사람을 나락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다행히 작가는 마지막에 곤이의 극적인 귀화를 통하여 사람의 선한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는 결국 사람들의 시선과 선동이 그 본성을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뜻한다. 곤이는 어린 나이에 필사적으로 발악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작중 묘사를 보면 너무나도 애처롭다: "곤이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의미를 모를 웃음을 머금은 입이 빠르게 실룩거렸다." 그러나 의문이다.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보며 공감을 하겠지만, 이것은 위선이 아닌가? 우리는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였을 때 외면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그 외면은 너무 당연시하여 일말의 죄책감도 사라지지 않았는가?

다행히 결말은 희망적이다. 윤재의 희생을 통해 용기를 낸 곤이, 절망적인 뇌사 상태에서 회복한 어머니, 그리고 끝내 감정을 조금이나마 맛본 윤재. 그 누구보다 위태로운 인물들이 발휘하는 끈질긴 희망은 독자들에게 완벽히 전달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윤재의 가족이 책방을 연 수유동에 가서 그의 여정을 다시 한번 그려보고 싶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 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찍혀 있는 대로, 그려져 있는 그대로만 존재했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느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 있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밖에 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윤 교수는 곤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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